themestory


모든 히어로들은 기본적으로 지구 세계 평화를 위해 봉사한다. 그들의 노고는 절대 노출되는 법이 없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진짜 얼굴과 이름을 숨긴다. 성공적인 블럭버스터 히어로들은 절대 이 법칙을 깨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이고 초인간 히어로 [수퍼맨]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얼굴을 가려야 살아갈 수 있다. 상류층 브루스 웨인, 가난한 총각 피터 파커, 인간이 아닌 수퍼히어로 클라크 켄트도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마찬가지다.

존 파브로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을 보고 나오면 곧장 스포일러!라 할지라도 엔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진다. 결국 [아이언맨]의 핵심은 엔딩에 있다. 엔딩에서 우리는 이제껏 보지 못한 21세기 신영웅을 목격하게 된다. 이건 코믹스 영웅의 세계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까.
만약 영웅들만 사는 세계의 조간 신문이 뜬다면 '세상에서 가장 뻔뻔하고 노골적인 영웅 탄생'이라며 비아냥거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엔딩은 정말 일대 충격이라 할만하다. '내가 [아이언맨]이다' 참지 못하고 말하는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보고 있자면 12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진 이 블럭버스터에서 왜 그렇게 아머슈트(갑옷)을 입는데 그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아마도 코믹스 히어로 사상 이렇게 멋내는 데 신경을 쓰는 영웅은 생전 처음이다. 그래서 보통의 히어로물에서 기대하는 액션활극은 [아이언맨]에서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토니 스타크가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셀러브리티 그 자체의 삶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데도 이 속물스런 중년남이 전혀 밉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2008년 봄에 찾아온 올해의 베스트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배경이 사막이었던 것처럼 존 파브로의 히어로 액션 또한 그 사막에서 시작된다. 당연히 오프닝부터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막에서 토니 스타크는 괴물로 변할 것이고 자기가 보지못한 미국의 추악한 이면을 보고 자기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너무 관습적인 영웅담에 기들어진 나의 이 나태한 영화보기 습관은 보기 좋게 빗나가기 시작한다.


사막의 괴물 탄생이라는 점에서 바로 연상되는 이안의 [헐크](2003)는 인간에게 가장 안정적인 컬러인 녹색안에 숨겨진 분노와 복수의 폭력성을 히스테리하게 담아냈는데 [아이언맨]에서는 그런 복잡한 얼터 에고의 심각성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다. 단지 자신이 만든 신무기 제리코 미사일 프로모션차 아프가니 스탄에 들른 토니 스타크는 납치를 당하고 탈출하기 위해서 어리버리한 중동 사람들 몰래 첫번째 아머슈트 Mark1를 만들 뿐이다.
그는 미사일을 만드는 대신 갑옷을 만들고 달아날 만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무기 발명가이자 대형 군수업체 CEO일 뿐이다. 셀러브리티의 가벼운 삶에 익숙한 그가 처음으로 바라본 중동의 풍경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진짜 리얼한 삶의 풍경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개과천선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신이 만든 신무기가 어떻게 쓰여지는지를 봤을 뿐이다.
2개월 가량 사막의 동굴에서 인질범 생활을 하다 무사히 자신의 삶으로 복귀한 토니 스타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에서 건강 진단을 받는 대신 치즈 버거를 사들고 기자회견을 벌이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 모두를 공개한다. 꺼리김도 없고 망설임도 없다. 그의 까다롭고 화려한 셀러브리티 라이프 스타일은 납치, 인질 사건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라면 이것은 주인공에게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제공되는데 토니 스타크는 끄덕없다. 하긴 4살때부터 컴퓨터를 조작하는 놀라운 지능을 가진 이 천재 재벌가는 다른 여타의 히어로들과 다르게 근본적으로 자아분열증을 일으킬만한 트라우마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일반적으로 티비 가십 뉴스를 달구는 빅 뉴스를 제공했지만 토니 스타크의 군수사업에서 손뗀다는 공식적인 입장은 그저 돈 많은 재벌가의 스트레스 장애쯤으로 치부되고 만다. 이 공개 은퇴식은 마치 카메론 크로의 [제리 맥과이어](1997)을 연상시키는데 톰 크루즈와 르네 젤위거 의 로맨스처럼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그의 비서 버지니아 페퍼 포츠(기네스 팰트로)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제 1막이 사막에서 납치-플래시백-재벌 2세로서의 승승장구-동굴에서의 인질/탈출이라면 제 2막은 사업 철수와 공식 은퇴-운동생활과 슈트제작-모의 실험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온 토니 스타크는 곧장 작업실로 달려가 2번째 아머슈트 제작에 Mark2에 돌입한다. 가장 즐겁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지점인데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의 홀로그램을 이용해 자신의 특별한 슈트를 제작하는데 사막에서 토니 스타크가 새로 눈뜬 것은 옷을 만드는 재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대단히 섬세하고 치밀한 공정 과정을 마친 토니 스타크는 공중 부양의 관건인 힘을 조절하는 테크닉을 익히는데 열중한다.
드디어 첫번째 비행. 새처럼 날아오르는 기쁨을 맛본 토니 스타크는 [슈퍼맨 리턴즈]처럼 지구 바깥으로 날아오르는 비행을 시도한다. 그것은 마치 필립 카우프먼의 걸작 [필사의 도전](1983)의 마의 한계에 도전하는 비행사처럼 전투적이다. 그러나 명백하게 토니 스타크는 우주비행사가 거치는 고된 연습과 훈련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고도에서의 비행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토니 스타크가 다음에 한 일은 바로 슈트의 재질을 바꾸는 일. 고도에서 얼지 않고 비행할 수 있는 특수 재질을 제작하면서 이번에 레드와 골든 색으로 컬러 까지 바꾼다. 그것이 바로 세번째 아머슈트 Mark3이다. 신무기 발명가에서 디자이너도 만들기 힘든 특수 재질의 로봇 옷을 만드는 재단사로 탈바꿈되는 순간이다. [아이언맨]이 아무리 셀러브리티 라이프 스타일이라지만 확실히 퀴어 코드가 많이 반영된 영웅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적과 싸울 생각은 안 하고 우선 자신이 입을 기계 옷에 신경을 빼앗긴 것을 보면 참으로 이색적인 히어로가 아닐 수 없다.


제 3막은 공동 회사 대표 오베디아 사장(제프 브리지스)의 음모가 드러나면서 아이언맨 대 아이언 뭉거의 대결로 요약할 수 있는데 유사 부자의 관계인 토니 스타크와 오베디아의 싸움은 이안의 [헐크]를 재인용 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그들처럼 심각하지 않다. 자신이 입은 로봇 옷이 더 좋다고 서로 으르렁대면 싸우는 10대의 철부지 싸움 같다. 무조건 크기로 상대 를 제압하려는 아이언 뭉거의 단순무식한 고전적인 기계 룩과 슬림하게 인체의 곡선을 살려준 섹시 룩의 대결은 당연하게도 더 멋진 룩을 보여준 아이언 맨의 승리로 끝나버린다.
공간을 이동하는 돌연변이의 액션활극인 덕 라이먼의 [점퍼](2008)처럼 [아이언맨] 역시 1편에서는 그리 복잡한 이야기가 진행되지 못한다. 그들은 셀러브리티와 같은 단순하고 즉흥적인 삶을 즐기려고 하고 위기의 순간 자신안의 다른 능력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명백히 [트랜스포머](2007)의 영향권 아래 놓인 할리웃 블럭버스터의 한계인데 로봇에 대한 로망이 10대 소년에서 40년대 중년남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가진 묘한 매력 덕분에 [아이언맨]은 유머러스한 여유까지 풍긴다. 전적으로 그의 화려했던 실제 배우의 삶 덕택이다.


물론 가슴에 박힌 기계 심장이 가져온 그의 변화에도 흥미로운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속물적인 재벌가가 기계 심장으로 인해 인간적으로 변모한다는 설정이나 기계와 인간의 주제로 진지한 사유를 한 수많은 SF영화들 - 이를테면 폴 버호벤의 [로보캅](1987)이나 조금 더 심각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들, 거기에 미드 [사라코너 연대기]에서의 기계 장치를 둘러싼 인간과 기계의 대립 까지 나아가자면 [아이언맨]이 그리는 이 기계-인간의 문제는 계보를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트라우마와 이중성을 벗어버린 첫번째 코믹스 히어로가 탄생되었다는 것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어쨌든 로봇 옷에 지나친 사랑을 퍼붓는 별난 영웅이 지금 등장한 것은 동시대 문화의 자기 복제가 아닐까 진단해본다.
몸짱의 열풍으로 [300](2007)과 같은 영화가 환영받은 데 이어 셀러브리티의 삶이 가십을 뒤덮는 세상에서 [아이언맨]의 탄생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트랜스포머]가 일방적인 소년들의 로망이었다면 [아이언맨]은 소녀들도 동참가능한 인형놀이의 확장 으로 보인다. 바비 인형 대신 셀러브리티 멋진 남자에게 로봇 옷을 입히는 상상의 모험극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앨리 맥빌]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이 된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결과리라. (한편으로는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게이 소년들의 판타지로 읽히기도 한다.)

글쓴이 : kino9505
출처 : 2046 SLACKER Out of the world
2008/05/06 05:56 2008/05/06 05:56

'아이언맨'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5/06 kino9505 인형놀이- 아머슈트 갈아입기 [아이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