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멀더와 스컬리 [엑스 파일: 나는 믿고 싶다]
2008/08/27 11:23
파일>은 너무 올드해진 느낌이었다. 마치 먼지 가득 쌓인 창고에서 오래된 일기장이나 사진첩을 찾아서 보는 기분이 들었다.
멀더와 스컬리의 음모에 맞선 진실찾기는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데 데이비드 듀코브니와 질리언 앤더슨의 모습이 달라졌다. 6년간의 공백 그 물리적 시간만큼 그들은 변해 있었다. 물론 쇼타임의 2007년 프로젝트 <캘리포니케이션>에서 데이비드 듀코브니는 그의 명성에 걸맞는 행크 무디라는 원 히트 원더 베스트셀러 작가로 분해서
모처럼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았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가까스로
대중들에게 다가온 그가 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엑스 파일>의 멀더로 다시 돌아온 것일까. 그것도 <캘리포니케이션> 시즌2를 앞둔 시점에서. 행크 무디와 멀더 사이의 거리만큼 <엑스 파일> 프로모션 때 찍힌 데이비드 듀코브니의 모습은 행크 무디와 멀더의 모습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그것이 그를 더 피곤하게 보이게
만들었고 <엑스 파일: 나는 믿고 싶다>(이하 <나는 믿고 싶다>)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멀더의 데이비드 듀코브니보다 더 조용히 지낸 스컬리의 질리언 앤더슨은 임신 상태에서 오랜만의 스포트라이트가 반가웠는지 시종 일관 밝은 모습이었다. 상반된 두 배우의 모습에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엑스 파일>과 6년 후의 현재 그리고 캐릭터와 배우 2개의 정체성 모두가 교묘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개봉 둘째날인 8월 14일 조조로 <나는 믿고 싶다>를 보고 나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6년전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커졌다는 것이다. 음모이론에 맞서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분노와 젊음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재확인했다. 그건 영화의 완성도와 아무 상관도 없다.
<나는 믿고 싶다>의 영화적 완성도를 논하는 찌질한 반응을 지켜보면서 역시 '진실'이란 결국 밝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많던 엑스필. 또는 그 유행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절박함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세상이 바뀌니 사람들도 바뀌어 있었다.

영화 속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는 "나의 신념은 그대로인데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나는 믿고 싶다>에서 "포기하지 마라"와 함께 가장 중요한 대사다. 그 대사를 들은 엑스필들은 분명 슬픔과 흥분에 가슴 절였을 것이다. 우리가 믿었던 세상은 변해가는데 우리 자신의 믿음과 신념은 그대로다. 그러니 멀더와 스컬리는 제도권 밖으로 버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의 신념이 흔들리고 변질되어서가
아니다.
6년이 지난 후 멀더와 스컬리는 FBI 엑스 파일 부서에서 쫓겨난 상태이고 거의 운둔하는 것처럼 지내고 있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윌리엄은 입양을 보내고 있고 멀더는 엑스 파일 부서와 똑같이 꾸며놓은 개인 서재에서
갇혀 있다. 스컬리는 성당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며 시한부 환자인 소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시험 단계의
수술을 해야하는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 삶은 FBI 요원의 삶에서 멀어졌을 뿐 여전히 자신의
신념과 싸워야 하는 또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단지 윌리엄 그들 삶의 축복인 아이가 부재할 뿐이다. 영화에서 묘사되지 않았지만 어머니 스컬리의 불안함과 불확신함은 분명 윌리엄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비록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파트너 겸 부부로서 멀더와 스컬리는 윌리엄의 존재만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
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속한 세상이 바뀌었을까. 어떤 부분은 나아졌고 어떤 부분은 더 나빠졌다. 삶의 진실이 그들이나 우리에게 모두 더 가까운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이 가장 슬픈다면 슬프고 무섭다면 무서운 것이 되어버렸다). 엑스 파일 부서가 사라졌다고 해도 세상의 초자연 현상이 사라졌을까. 과학과 종교로 풀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TV 시리즈의 에피소드처럼 '극장판' 엑스 파일이 유머러스하고 극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초자연적인 현상이란 것이 본래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들이 맺은 관계와 욕망에서 빚어진 비극의 일이란 것을 <엑스 파일>을 만든 크리스 카터나 데이비드 듀코브니,
스컬리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된 것이다. 더욱 기막힌 타이밍일지 모르지만 한 케이블 방송에서 심야 시간에
틀어주는 리얼 스토리인 <엑소시스트>의 모든 이야기는 죽은 원한이 산 사람의 육체에 빙의되어서 장애를
발생하고 또다른 삶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방송의 취지는 의뢰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살아가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이야기는 <양들의 침묵>의 렉터 박사처럼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아동성추행범인 전 카톨릭 신부 조셉의 환영이 실종된 사람들의 신체
부위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그의 미스터리한 능력이 이성과 과학
으로 사건을 추적하는 FBI의 방식과 다르다는 데서 기인한다.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FBI의 방식으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고 우리가 믿을 수 없는 조셉의 능력으로는 사건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 <나는 믿고 싶다>의 실종 사건과 살인의 윤곽이 좁혀갈수록 이미 미스터리한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악마가 저지른 일도 아니고 귀신의 빙의가 된 사람이 저지른 일도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저지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동기 자체로 들어가면 사건의 시작에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난 믿음에서 시작된다. 단지 그들이 신이든 우리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와 다른 선택, 즉 절대 하지 말아야 선을 넘겨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믿고 싶다>의 두 게이 커플. 한 남자는 어린 시절 신부님께 성폭행을 당했고(그 신부는 바로 환영을
보는 조셉이다) 불치병에 걸린 상태이고 다른 남자는 그 남자를 위해서 타인의 건강한 육체를 훔치게 된다.
우리가 정말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란 바뀌지 않는 얼굴과 바뀌어버린 육체를 한 연인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범행을 저지르는 남자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살인을 저지른다. 건강한 육체를
연인에게 제공하기 그는 완벽한 매치가 되는 육체를 사냥하고 나선다. 영화는 이들 커플에 대해서 더 깊게
들어가지 않지만 실종된 여자들 중 만약 불치병에 걸린 남자와 꼭 맞는 육체가 나타난다면 과연 이들 커플은
다시 섹스를 할 수 있을까. 여자의 육체와 남자의 얼굴을 한 프랑켄슈타인과 남은 삶을 살려고 하는 다른
남자의 욕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앤더슨이 있다. 이들의 관계는 무엇일까. 도플갱어 또는 얼터에고.
그 무엇이 되었든 이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는 한때 진실을 목격했던
그들조차도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과거 속에 머무는 유령처럼 현실에 남겨질 것인지 아니면 동시대에
일어나는 또다른 사건속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살아가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포기하지 마라"는 조셉 신부의 말에 스컬리는 그 예민한 감성과 이성으로 그것이 불확실한 수술을 앞둔 자신의 어린 환자를 두고 하는 말인지 곧 발생할 멀더의 생사가 걸린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필연인지 단순한 우연인지
알 수 없는 스컬리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부정의 대상 조셉 신부를 찾아가 진실을 묻게 된다. 그러나 대답은
알 수 없다. '포기하지 마라'는 말은 그녀 인생에 대한 그녀 자신의 신념 그 자체를 묻는 것임을 영화의 엔딩에
가서야 알게 된다. 그러나 영화 <나는 믿고 싶다>에서 진정으로 포기한 것은 어찌되었든 '윌리엄'이다.
크리스 카터가 '윌리엄'의 화두를 끌고 두번째 극장판을 찾아왔다면 성인 우화에 멈출 이야기 자체의 방향이
바뀌어버린다. '윌리엄'은 종교와 문명, 외계인과 인류에 대한 총체적인 질문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첫번째 극장판과 동일하게 규모는 커질테고 이야기의 핵심은 느슨해질 것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말로 6년만의 컴백을 알리기에는 우리가 인생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6년전 끝난 그리고 다시 두번째 극장판으로 돌아온 <엑스 파일>의 가장 근원적인 동기는 실종된 멀더의 누이 사만다였다. 이미 TV 시리즈에서 여러 번 그녀의 죽음과 영혼의 이야기를 다뤘고 멀더 자신 또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멀더가 이 기나긴 진실 찾기를 끝내지 못하는 이유는 인류의 역사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꿈꾸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답은 다를지도 모른다. <엑스 파일>의 진실 또는 종착역 또는 결론이 <매트릭스>나 <월-E>처럼 상반된 세상의 모순과 공존해야
한다고 내려질지라도 결국 멀더나 스컬리 또는 우리 자신이 그것을 진심으로 깨닫기 전까지 진실을 찾는 일은
끝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삶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해도 변해있는 너와 내가
아닌 멀더와 스컬리처럼 언제나 곁에서 함께할 파트너다.
글쓴이 : kino9505
출처 : 2046sl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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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돌아왔군요.
그냥 전설로 남지..
난 반가운데...